Lloyd Evan:그래. (사뭇 놀란 듯 순간 눈을 크게 떴다, 기분 좋은 미소를 품었습니다. 잡은 손에 힘을 좀 더 싣고….)
IV. 연회
마을 구경을 마치고 에반 공작과 함께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하인들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내일은 공작성에서 큰 연회가 열리는 특별한 날이니까요.
할리는 몇 주 전부터 초대장을 부치고,
올가와 쿠루미를 포함한 사용인들은 메뉴를 정하고,
성 내부를 꾸미며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이 연회는 <플왕공>에서 가장 최고의 장면으로 꼽았던 부분입니다.
문득 쿠루미는 연회에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너트가 가지고 있는 기억과 바람이 부딪혀 갈등이 일어납니다.
몰락귀족의 신분으로 그런 귀한 곳에 가도 괜찮은 건지…
불안감이 연기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물론 몰락귀족임을 알아볼 사람은 백 중 하나보다도 적을 테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렇게 고민에 빠져있던 와중, 할리가 쿠루미를 부릅니다.
Harly:너트, 공작님이 찾으세요.
할리의 안내에 따라 에반 공작의 응접실로 들어가자, 에반 공작은 손가락으로 바로 옆을 가리킵니다.
마네킹에 입혀진 저것은…
<지능> 판정이 가능합니다.
Walnut:
지능
기준치:
63/31/12
굴림:
20
판정결과:
드레스?
귀족처럼 레이스나 보석이 잔뜩 달린 화려한 드레스는 아니지만,
누가 보아도 공작가의 사람이라 생각할 법한 단정한 아이보리 컬러의 드레스입니다.
맞춤제작이 아닌 기성품 같기는 해도,
척 봐도 고급스러운 것이 아마 좋은 원단을 쓴 것 같아요.
양장점에 갔을 때 미리 사이즈를 알아본 것일까요.
너트에게 딱 맞을 것 같은 크기입니다.
Lloyd Evan:마음에 드는가? 당신에게 드레스를 꼭 선물해주고 싶었어.
다름이 아니라… 음….
내가 며칠 동안 골 썩히던 문제를 너트, 네가 풀었지? 익숙지 않은 필체를 보고 당신이겠거니 생각했어.
이 드레스는 그것에 대한 답례야.
이 정도면 누가 무시하지도 못할 거야. 원하는 만큼 즐기도록 해.
말을 끝낸 에반 공작이 작은 보석 상자를 하나 건넵니다.
열어보니 안에는 진분홍색 루비가 박힌 금색의 목걸이가 있습니다.
<관찰력> 판정이 가능합니다.
Walnut:
관찰력
기준치:
48/24/9
굴림:
12
판정결과:
이건…
자세히 목걸이를 살펴보던 쿠루미는 깨닫습니다.
이 목걸이는…
언젠가 현실에서 세키가 쿠루미에게 선물했던 목걸이랑 똑같다는 것을요.
우연들이 겹치고, 겹칩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요.
Lloyd Evan:아, 그건 별개의 선물이야.
왠지는 모르겠는데, 당신이 이 성으로 오기 전 날 내 서재 서랍에 이런 목걸이가 있더라고.
올가에게 물어봐도, 할리에게 물어봐도 다 모르는 것이라 하고…
…아무래도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해서.
아름다운 드레스에 어울리는 목걸이까지.
게다가 연회는 소설 속의 악역들이 단체로 나오는 장면이기도 하죠.
4일 간의 연회동안 에반 공작이 그들과 맞서 싸우는 클라이맥스 장면이 바로 이쯤이었습니다.
놓칠 수야 없죠.
하루 정도는 마음 편히 즐기도록 해요.
연회장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
몇 주간 공작성의 사용인들과 열심히 일한 보람이 있어요.
에반 공작이 선물해 준 드레스와 목걸이를 하니 왠지 모르게 공작가의 귀족이 된 느낌입니다.
세키가 보면 얼마나 좋아했을까요.
하지만 이 아름다운 연회에도… 옥에 티는 필연적인 것.
에반 공작을 사랑한다며 약혼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다이애나 영애와,
비슷한 나이의 귀족파임에도 불구하고
저보다 훨씬 성공한 에반 공작을 시기하는 클라우드 영식은 물론,
<플왕공>의 최종 보스이자 여러 차례 암살 시도까지 했던 알브레히트 공작까지 보입니다.
자유 RP가 가능합니다.
<01>
다이애나 영애가 예사롭지 않은 눈빛과 걸음으로 에반 공작에게 다가옵니다.
에반 공작이 진짜 세키는 아니지만, 이거 묘하게 신경 쓰이는데…
아무래도 끼어들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Walnut:흠, 흠! (괜히 기침)
다이애나 영애가 쿠루미를 기분 나쁜 듯이 쳐다봅니다.
Veronica Diana:어머… 이 처음 보는 얼굴은 누구야?
나름 멋 부린 것 같은데 안타깝게 됐어.
내 눈은 못 속이거든. …자세히 뜯어보니 알겠어. 당신 하인이지?
당신 같이 천한 사람들은 아무리 꾸며도 나 같은 모태 귀족을 따라잡을 순 없을 걸?
‘가짜’ 귀족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기품이란 게 보이지가 않거든, 호호!
다이애나 영애는 쿠루미의 쇄골 근처를 검지로 쿡,
찌르듯 밀어내고는 에반 공작에게 가까이 붙습니다.
그리고는 에반 공작의 오른손을 덥석 붙잡네요.
Veronica Diana:꼴에….
풋, 하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어렴풋이 들립니다.
Veronica Diana:에반 공작님? 저에요, 베로니카.
오늘은 저와…
다이애나 영애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에반 공작은 부드러운 미소로 쿠루미를 바라보더니
쿠루미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입니다.
Lloyd Evan:드레스와 목걸이, 역시 생각대로 아주 잘 어울려.
그렇게 말하고는 쿠루미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그 자리를 뜹니다.
다이애나 영애에게 목례하는 것도 잊지 않고요.
당신은 개운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걱정스러운 마음에 뒤를 돌아봅니다.
공작님을 바라보는 영애의 눈에서 레이저라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Veronica Diana:기분 나빠! 방으로 돌아가야겠어, 릴리!
분노를 이기지 못한 다이애나 영애가 자신의 하인과 함께 방으로 돌아갑니다.
다행이네요.
<02>
클라우드 영식이 에반 공작을 향해 거친 걸음으로 걸어옵니다.
구두 소리가 온 바닥을 울리는 것만 같네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을 보니 이미 술도 여러 잔 마신 것 같아요.
주변 하인들은 각자 담당한 일을 하느라 바쁘니,
큰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쿠루미가 나서서 해결해야할 것 같습니다.
Walnut:저... 클라우드 영식이 맞으시죠? 좋은 밤이에요. (애써 미소...) 그러니까... 음식은 입에 맞으신가요?
Miliam Cloud:조오은, 바암?? 내 표정이 좋아 보이냐? 젠장, 이제 하인까지 나를 기만하는 거야?
어쭈, 자세히 보니 에반 공작이랑 만날 붙어 다니던 녀석이잖아?
너어… 내가 누군지 제대로 모르는 것 같군.
안다면 이렇게 함부로 말을 걸 용기도 나지 않을 텐데 말야.
내가 바로 황. 제. 파.
클라우드 공작가의 장남이란 말이야―!!
흥분한 클라우드 영식이 소리를 빽 지릅니다.
Walnut:(얼얼...)
클라우드 영식이 씩씩대며 당신에게 성큼성큼 다가갈 때,
에반 공작이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옵니다.
…화가 난 걸까요?
Lloyd Evan:그쯤 하도록 하지, 클라우드 영식.
에반 공작의 묵직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클라우드 영식은 픽 웃습니다.
Miliam Cloud:이야, 하늘보다도 높으신 에반 공작님 아니신가!
그런 귀한 분께서 미천한 하인이랑 이렇고 저런 관계인지는 몰랐는데~. 응?
내가 굉장한 실례를 범했어?
크크… 콧대 높으신 공작님도 실은 별 거 없구만! 으하하!
차가운 눈으로 클라우드 영식을 바라보던 에반 공작은,
허리에 찬 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며 낮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Lloyd Evan: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말은 가려서 해야지, 자비에르 밀리암 클라우드.
내가 한 마디만 해도 당신의 가문이 파문 당하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하늘보다 높으신 에반 공작님’이라 부르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면…
난 당신의 어리석음에 연민을 표하겠네.
그 말에 클라우드 영식의 미소가 싹 사라지고,
당황한 얼굴로 재빠르게 연회장을 벗어납니다.
다행이에요.
Lloyd Evan:자꾸 좋지 못한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네, 너트.
당신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
<03>
우연찮게 알브레히트 공작이 에반 공작이 좋아하기로 유명한 와인에 이상한 액체를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와인 잔을 들고 웃으면서 에반 공작에게 걸어가는 게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에반 공작이 저걸 마셨다간 큰일 날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Walnut:공, 공작님! 드시고 싶은 음식 없으신가요? 제가 당장~...! (알브레히트 밀침)
쨍그랑!
순간 날카로운 소리가 연회장을 울립니다.
동시에, 연회장에 있는 하객들의 시선이 모두 알브레히트 공작에게로 쏠립니다.
이런…
떨어진 와인잔은 산산조각이 난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고,
알브레히트 공작의 흰 셔츠는 쏟아진 붉은색 와인에 푹 젖어버렸습니다.
연회장은 술렁거리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Gabriel Albrecht:제기랄, 지금 장난해?
알브레히트 공작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
당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습니다.
Walnut:(같이 노려봄) 와인에 뭔갈 넣으셨잖아요!
Gabriel Albrecht:내가 와인에? 무슨 소리야?
알브레히트는 표정하나 안 변하고 뻔뻔한 모습을 유지합니다.
Gabriel Albrecht:알브레히트 공작가의 가주인 나를 모함하려고 하다니… 요즘 하인들은 꽤 살만해 졌나 보군.
아님, 에반 공작가의 하인들은 교육을 이렇게 밖에 못 받은 건가?
Walnut:꽤 살만하니 셔츠정도야 배상해 드리면 되나요?
Gabriel Albrecht:뭐라고? 이게 어디서 함부로…!
Lloyd Evan:그만하게, 알브레히트.
내가 배상하겠네. 모처럼의 연회인데 즐거운 분위기를 망칠 수야 없지.
자네가 이해하게. 자네 말대로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 네 잘못이 크네.
Gavriel Albrecht:허.
Lloyd Evan:올가, 임시로 갈아입을 만한 새 셔츠를 가져다주게.
Olga:알겠습니다.
Lloyd Evan:이런 자리가 흔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자네도 귀한 내빈들을 모신 자리에서, 불상사로 주목받고 싶지는 않을테지?
오늘 일은 마음 넓은 자네가 용서하시게. 연회가 마무리 된 후에 똑같은 셔츠로 배상하겠네.
알브레히트 공작은 여전히 씩씩 대면서도,
사람들의 시선과 웅성거림을 빨리 묻어두고 싶은 건지 크게 반응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알브레히트 공작은 수긍하며 가볍게 목례를 건네고
뒤돌아 가면서도 쿠루미를 한 번 째려봅니다.
오늘은 알브레히트 공작이 험한 일을 할 수는 없을 것 같군요.
다행이에요.
Walnut:... (에반 눈치 보고)... 징계를 내리실 건가요?
Lloyd Evan:(너트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담습니다.) 아니, 알브레히트 공작의 만행은 익히 알고 있으니까.
당신이 거짓말하지 않은 것 쯤은 이미 알고있어.
눈을 보면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으니까.
Walnut:...하나, 도가 지나쳤던 건 맞습니다. 죄송해요. (에반을 지그시 보곤) 그래도 이런 건 앞으로 넘어가지 말고 확실히 벌을 주셔야... (다른 시종들한테도 이러는지 걱정스러움)
Lloyd Evan:아니, 방금 건 나를 위해서 한 일이잖아.
오히려 너트 당신이 깨진 유리에 다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네.
굳이 벌을 원하신다면 체격있는 성인에게 무모하게 맞서려 했던 일을 다그쳐야 하나, 응?
다쳤으면 어쩔 뻔 했는지, 참... 조심성도 없지.
걱정하지 말고 오늘은 마음 편히 즐겨. 자꾸 안 좋은 일을 보게 해서 미안하네.
V. 테라스
밤이 깊어지고, 연회는 점점 끝에 다다릅니다.
다사다난했던 연회였지만 특별한 추억이 생긴 것 같습니다.
오늘은 왠지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아요.
세키도 함께 했으면 좋을 텐데….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있는 쿠루미를 올가가 부릅니다.
에반 공작이 테라스에서 쿠루미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요.
그 말에 곧장 테라스로 향하자,
기다리고 있던 공작의 미간이 어렴풋이 찌푸려집니다.
Lloyd Evan:당신은 오늘 모두가 열심히 준비한 연회를 망칠 뻔 했던 그 세 사람.
그 세 사람과 관련된 일들, 더 커지기 전에 당신이 해결해줬어.
마땅히 칭찬받을 일이고 대단한 일이지.
하지만 최근 이상한 일들의 연속이었어…
당신과 함께 있으면 꾸준한 위화감과 기시감을 느껴. 뭔가 이상해.
당신이 풀어줬던 문제를 방금 다시 살펴보고 왔어.
Lloyd Evan:그런데 다시 살펴보니… 당신의 필체가 특이한 게 아니라, 내가 전혀 모르는 글자로 적혀있던 거였어.
에반 공작은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Lloyd Evan:플뢰르브 주변 국가를 다 살펴도, 이런 글자를 쓰는 곳은 없어.
어떻게 내가 모르는… 아니,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언어를 내가 이해하고 풀 수 있었던 거지?
에반 공작은 쿠루미에게 서류 묶음을 내밀었습니다.
에반 공작이 잠시 조는 사이 쿠루미가 풀어주었던 문제들입니다.
<관찰력> 판정이 있습니다.
Walnut:
관찰력
기준치:
48/24/9
굴림:
48
판정결과:
문제는 분명 일본어로 풀었을텐데?
쿠루미는 무의식적으로 일본어로 적어가며 문제를 풀었습니다.
지금 에반 공작이,
생전 처음 봤을 일본어를 이해하고 문제를 풀었다는 것입니다.
<지능> 판정이 있습니다.
Walnut:
지능
기준치:
63/31/12
굴림:
88
판정결과:
하지만…
17세기면 아직 가지 못하는 국가도 많을 텐데…
이 세계관에서 일본어와 모양이 같은 문자를 사용하는 나라가 충분히 존재할 수도 있고,
에반 공작이 그 언어를 우연찮게 배운 적이 있을 수도 있죠.
아니면 천재이기에, 맥락을 따라가며 풀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고요.
Lloyd Evan:기억의 일부분을 도려낸 것만 같아….
근데 이걸 어떻게 갑자기 깨달을 수 있는 거지?
"여기 있는 나는 대체 누구고, 당신은 누구지?"
"너트, 당신은 정말 너트고, 나는 로이드 에반 공작이 맞는 건가?"
Walnut:공작님이... 로이드 에반 공작님이 아니라면 누구라고 생각해요?
Lloyd Evan:…모르겠어. 지금으로선 확신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당신에게서 받은 느낌은 항상 이질적이기도, 익숙하기도 한 미묘한 느낌이라…
나를 안심하게 만들면서도, 불안하게 만들었어.
그래서… 당신이라면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Walnut:알고있는 걸 말하면 우린...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Lloyd Evan: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것보단 낫겠지. 받아들일 준비는 됐으니, 부디 어떤 말이든… 부탁할게.
Walnut:여긴 제가 살던 곳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전 소설책을 보고 있었고, 이 곳은 그 책의 배경.
등장인물과 일어나는 사건들까지 모든 것들이 책과 같아요. 그리고 공작... 에반,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정말... 정말 닮았어요.
완벽히 닮지는 않은 게 다행인건지... 당신이 그가 아니라는걸 상기했는데도 가끔씩 그와 닮은 행동을 할 때마다 내가 살던 곳과 그이가 너무 그리워져요. (힘을 주듯 미간을 찌푸립니다.)
Lloyd Evan:당신이 사랑하는 그 자는 어떤 사람이지?
어떤 나라에서 살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점이 나와 비슷하고…
어떤 이름을 가진 자인지 말해 줄 수 있겠나?
Walnut:저랑 같은 국가, 일본에서 함께 살아요. 최근엔 본가에서 요양 중이고... 그래서 못 본 지 오래되었어요. 채식을 선호해서 영양 부분이 걱정이 많이 돼요.
에반과 닮은 구석은... 글쎄요, 가끔씩 당신이 뻔뻔하고 능청스럽게 구는 건 전혀 닮지 않았어요.
그 이는 그렇게까지 대담하지 못하거든요. (작게 웃곤)
당신의 얼굴이라던가... 분위기. 전체적인 성향을 많이 닮았을까요.
에반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 이의 이름을 불렀었는데, 에반은 기억 나나요?
세키, 하나자와 세키예요.
고민하다, 말을 고르고 골라서.
간신히 입 밖으로 내었습니다.
Lloyd Evan:하나자와 세키…
흔들리는 눈으로 쿠루미를 가만 바라보던 에반 공작이 순간 ‘윽’하며 제 머리를 감싸 쥡니다.
얼마가 지났을까요.
고개를 푹 숙인 채 고통스러워하던 그의 양손이 떨어지고,
진홍색의 눈이 당신을 가만 응시하고 있습니다.
평온한 것 같으면서도,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빛을 머금은 눈은 울 것 같이 붉어졌습니다.
Lloyd Evan:…그래. 그렇구나.
뚝.
눈에서 이어지는 한 줄기 방울이,
에반 공작의 뺨을 조용히 그어 내립니다.
이어지는 아주 애절한 부름에 당신은 고개를 듭니다.
Lloyd Evan:平井… 胡桃.
히라이… 쿠루미.
아, 얼마 만에 듣는 모국어인가요.
아니,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세키의 말을 듣는 게 얼마 만인가요.
당신을 응시하는 맑은 눈이 있습니다.
그래요. 저 눈은 분명히 세키입니다.
다정한 목소리도 분명히 세키예요.
어째서 에반 공작이 세키라는 것을… 헤아리지 않았을까요.
왜 기시감을 믿지 않았을까요.
짙었던 흑색의 머리가
뿌리부터 원래의 숙람색으로 물들어갑니다.
花澤関:보고싶었어, 정말로.
흔치 않은.
진홍색의 눈동자가 부서지는 눈물을 그득하게 담고 있는 광경은
반갑기도 하면서, 밉기도 하고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기도 합니다.
平井胡桃:...왜 여기 있는 거예요 세키... (엄지로 눈가를 쓸어준다.)
花澤関:걱정했어. 네가 여기 올 걸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나는… 정말로…. (눈가를 쓸어주는 손을 조심히 감싸 잡습니다.)
平井胡桃:진짜... 정말...!
(뻑! 소리나게 가슴팍 침)
花澤関:(윽, 하는 소리 한 번 안내고 묵묵히 받는…)
平井胡桃:사람 놀래키기나 하고! 기억나긴 해요? 얼마나 재수없게 굴었는지도?
花澤関:모르겠어. 내가 모르는 새 실언이라도 했어? …재수없게, 굴었어?
상처가 될 말이라도 한 건 아니지? …미안해.
平井胡桃:평소엔 안 하던 짓이나 엄청하고... (눈물 찔끔 남...) 부담스럽게 군 것 말곤 별 거 없었어요...
花澤関:미안해, 미안해…… 나는 일찍이 알아차릴 줄 알았는데. 미안해. 내가 좀 더 확신을 줬어야 했는데. (온기를 머금은 손으로 당신의 뺨을 조심히 쓸어줍니다.) 울지 마. 잘못했어.
두 사람이 한참 동안이나 있었던 일을 고백하는 사이,
테라스 바깥에서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미남자가 나타납니다.
여긴 고층인데 어떻게 공중에 떠있는 거죠?
혼란스러운 눈으로 쿠루미와 세키가 서로를 마주 보면서 의아해하는 와중에,
그 미남자가 입을 엽니다.
:인간의 사랑은 흥미롭군.
언제 어디서든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해.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 너희에게 특별히 선물을 하나 하겠어.
사전에 너희를 현실로 돌려보내기로 약속했다만, 마음이 변했을 수도 있으니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너희는 현실로 돌아갈 수도 있고, 이 소설 속에 계속 머무를 수도 있어.
후자를 선택한다면, 그 대신에 현실 세계에 대한 기억이 모두 사라질 거야.
그리고 전자를 선택하여 현실 세계로 돌아간다면, 너희는 서로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고,
지인들 또한 너희가 연인이었단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게 돼.
또한 <플왕공> 소설 속의 에반 공작성은 파멸로 빠지고, 하녀장이나 집사는 미친놈으로 불릴지도 모르지.
花澤関:…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세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야.
花澤関:원래, 정해져있던 일 인가요? …기억을 잃는다는 게?
:물론이지, 원래 이렇게 해서 돌려 보내려고 했어.
너희는 흥미로우니까 말이야.
과연 기억을 잃어도 그 사랑이 지속되는지 보자고.
쿠루미, 너는 어떻게 할테지?
平井胡桃:...현실로 돌려 보내주세요, (세키 손 꽉 잡곤) 자신 있으니까.
그의 대답과 함께,
어딘가에서 ‘꺄아악’ 하는 비명 소리가 잇따라 들립니다.
연회장의 조명이 하나 둘씩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방황하며 아무것도 못하는 도중,
테라스에 있던 조명마저도 터져버렸습니다.
순간 눈을 질끈 감습니다.
…
얼마가 지났을까요,
쿠루미와 세키는 천천히 눈을 뜹니다.
살포시 눈을 뜨자 익숙한 천장이 시야를 가득 채웁니다.
아, 집으로 돌아왔네요.
머리 맡에는 읽다 잠들었던 소설책이 그대로 놓여있습니다.
<플뢰르브 왕국의 자색머리 공작님>
…자색머리?
원래 이런 제목이었던가?
호기심에 페이지를 펼쳐 보았습니다.
쿠루미가 ‘너트‘로서,
세키가 ’에반 공작‘으로서 겪은 일들이 소설로 쓰여 있습니다.
아무래도 단순한 꿈은 아니었나 봐요.
분명 기억을 잃는다고 했는데…
모든 것이 온전히 기억납니다.
사랑을 시험하기 위한 미남자의 거짓이었던 걸까요?
그리고 당신의 옆에는 가장 사랑스러운,
당신의 연인이 평소와 같은 다정한 미소를 품은 채 몸을 일으킵니다.
花澤関:좋은 아침, 쿠루미.
여느 때보다 따뜻한 목소리가 당신의 귀를 간질이고,
당신을 끌어안는 몸의 짙은 시트러스 향기가 주말 아침과 꼭 어울립니다.
오늘 아침은 로맨스 판타지 소설에 나올법한,
아기자기한 에피타이저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세키 생환, 쿠루미 생환
두 사람은 기억을 잃지 않고 현실 세계로 돌아와 살아갑니다.
花澤関:오늘은 늦장 부려도 괜찮아. 왠지 그러고 싶은 기분이고….
세키가 당신을 품에 감싸 안은 채 도로 침대에 눕습니다.
이런 행동이 잦은 건 아닌데…
아마도 소설 속의 경험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닐까요?
순간, 핸드폰의 알림이 울립니다.
소설책을 전해줬던 이치카로부터의 라인 메시지입니다.
平井胡桃:..세키는 소설 어땠어요? (본인은 별로였기에...)
花澤関:응? 나름…
平井胡桃:나름..
花澤関:고등학교 시절 생각도 나고. 그때 말투랑 닮지 않았어?
*하나자와 세키는 고등학교 시절 호스트부의 부장이었으며, 당시 계열 이름이 '공작계'였고 에반과 같은 말투를 사용했다.
平井胡桃:말투 말곤 별로 안 닮았던 것 같은데..(골똘..)
花澤関:소설 읽어보니까, 에반 공작이 조금…
…
…
부러워서.
平井胡桃:...
...
(볼에 뽀뽀해줌)
花澤関:…흉내 낸 거야. 이렇게 안는 것도.
(천천히 귀부터 달아올랐다…)
너트는… 싫어했던 것 같은데.
쿠루미는 괜찮아?
平井胡桃:고용인은 고용인답게... 대해줬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유치하게 권력으로... 자기가 다 해주겠다, 걱정 말라... 뻔뻔스럽게!
花澤関:… (풀 죽었음)
한치엔한테, 그러는데… 한치엔이 곤란해지는 건 싫으니까… 내가 했다고 자주 말하는데…
…별로야? 그럼 앞으로 안 할게.
*후 한치엔: 작중의 할리의 현실 모습. 하나자와 가의 사용인으로, 청소를 담당하고 있다. 하나 현재는 사용인으로서의 일을 시키기보다는 가족같이 지내는 中.
平井胡桃:세키... (애잔...)
花澤関:…노력할게.
平井胡桃: 한치엔씨한테 해주는 건.. 정말 아끼고 위해서 해주는 거라 본받을 행동이라 생각해요. 근데 에반은... 너트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세키가 나랑 한치엔씨를... 둘 다 좋아하지만 다른 것처럼.. (일방적 성애라 추측함..)
花澤関:아… (왠지 에반한테 이입해서 상처 받아버림)
응. 그렇지….
…내가 이러는 건 괜찮은거야? 연인 사이니까.
平井胡桃: ...연인, 이 된 이후는..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설명하는 게 조금 수치스러움...) 세키는... 내가 멋대로 안으면 남이 껴안은 것처럼 싫어요...? 난 안 그래요. 그런... 그런 느낌....
花澤関:싫어하지 않아. 안아주면 정말… 하루 종일 기쁠 걸.
平井胡桃:(냉큼 안아줌)
花澤関:(품으로 바싹 끌어당겨 이마에 짧게 입 맞추고) 하나요가 답장 기다리는 거 아냐?
나는… 좋았다고 전해줘.
平井胡桃:(적극적이라 속으로 깜짝 놀람) ... 그럼 같이 좋았다고 보낼게요. (웃으면서 올려다봄)
花澤関:응, 하나요가 기뻐하겠다. 그 책을 주제로 대화할 사람을 애타게 찾는 것 같던데.
사실 썩 마음에 드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아무렴.
이 책이 신기한 추억을 선사해 주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잖아요?
고되기도 했지만 앞으로의 서로를 더욱 소중히 할 수 있는,
'어디서 만나더라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주었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닐까'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봅니다.
2019. 11. 04 日 00:31am.
ED 3. [밤을 꼴딱 새서 정주행 했습니다. 인생작이에요.]
플레이를 종료합니다.
시나리오에 대한 진상이 있는 부분입니다.
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열람 시 주의해주세요.
탐사자 캐릭터에 맞춘개변을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원본 시나리오와 다른 점이 있다는 걸 유념해주세요.
책을 건네준 친구, 하나요 이치카는 이미 빙의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이름에 하나(花=꽃)와 이치카(いちか=한 송이)가 있는 것으로 그가 진상 (플뢰르=Fleur)에 얽혀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남자 친구와 함께 이 책에 빙의했습니다. 빙의하는 동안 쿠루미는 그가 가족 여행을 가서 연락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억을 갖고 빙의한 이치카와는 달리, 그의 남자 친구는 기억을 잃었습니다. 이치카는 기억이 없는 남자 친구와 함께 하는 동안 지쳐가며 더 이상 이 소설 속의 세계에서 버틸 수 없었고 이성이 지속해서 감소하던 그는 일시적인 광기에 빠집니다. 그에게 이미 지루함을 느끼고 있던 니알라토텝은 그에게 일주일의 시간을 줄 테니, 이 책을 다른 이에게 넘기고, 그가 그 세계에 빙의를 하면 그와 그의 남자 친구를 자유롭게 풀어주겠다고 합니다.
세키는 일주일째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쿠루미는 최근 세키의 정신질환(우울증, 약한 공황장애)이 심화되는 바람에, 본가로 돌아가 잠시 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세키의 동기, 후배, 직장 동료들은 막연하게 그가 아프다고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연락이 됐던 날, 세키는 대학 동기인 이치카의 ‘남자 친구’에게 책을 받았고, 이미 소설에 빙의했습니다.
기억을 잃었기 때문에 광기에 걸리지 않아서 일주일의 첫날에 세키에게 책을 넘겼던 그의 남자 친구와는 달리, 이치카는 광기가 끝난 일주일의 마지막 날에 쿠루미에게 책을 넘기게 됩니다.
니알라토텝은 이치카 커플과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재미를 보고 싶지 않다며, 기억을 잃은 세키에게 잠깐의 시간 동안 기억을 갖게 해 주고, 그 시간 동안에 한 가지의 제안을 합니다. 만약에 세키의 겉모습이 다르더라도, 쿠루미가 '로이드 에반'이 쿠루미의 세계에 있던 세키인 것을 알아챈다면, 두 사람을 원래 시대로 되돌려 주겠다고요.
세키는 쿠루미가 오기까지 주어진 일주일 동안, 이곳저곳에 자신에 대한 힌트를 남겨두고 검술, 미술, 음악, 승마 등 모든 것에 완벽한 흑발의 '로이드 에반' 공작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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